2022년 11월 챗GPT의 등장 이후 불과 3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인류는 상상 이상의 변화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AI는 이제 단순한 신기술을 넘어 개인의 삶과 기업의 생산성을 좌우하는 핵심 동력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 발전의 폭발적인 속도는 우리 사회에 중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과거의 성공 방정식이 더는 유효하지 않은 지금, 우리는 어떤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동시에 어떤 강력한 기회를 쥐고 있는지 깊이 있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속도’가 모든 것을 삼키는 시대: 과거의 전략은 통하지 않습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대한민국은 선진국의 기술과 시스템을 빠르게 학습하고 적용하는 이른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전략으로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루어냈습니다. 이는 마치 시험 답안지를 빠르게 베껴 쓰는 방식으로 압축적인 발전을 이룩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AI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러한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그 이유는 몇 가지 핵심적인 변화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기술 발전 속도의 압도적인 차이입니다. 과거 중공업 시대에 5년의 기술 격차는 노력으로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AI 분야에서 5년은 과거 산업의 50년 격차에 비견될 만큼 거대한 간극을 의미합니다. 선두 주자가 만들어내는 기술 격차는 기하급수적으로 벌어지기 때문에, 뒤늦게 출발하여서는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습니다.

둘째, 세계화 시대의 종말과 기술 패권주의의 강화입니다. 과거에는 선진국들이 기술을 전파하고 시장을 개방하며 후발 주자들의 성장을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2025년을 기점으로 세계화는 막을 내리고, 각국은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기술 패권 경쟁에 돌입했습니다. 이제는 그 누구도 핵심 기술을 공유하려 하지 않는, 철저한 이익 중심의 국제 질서가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셋째, 사회적 자본과 노동 환경의 변화입니다. 과거 세대는 개인의 희생을 감수하는 장시간 노동으로 기술 격차를 메울 수 있었으나, 현재의 주축이 되는 세대에게 이러한 ‘헝그리 정신’을 강요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결국, 벤치마킹할 대상도, 따라갈 시간도, 과거와 같은 방식의 노동력 투입도 불가능한 상황에 놓이면서, 우리는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의 길로 강제로 진입하게 된 것입니다.

‘대화’가 곧 ‘행동’이 되는 세상: AI 에이전트의 혁명

인터넷의 등장 이후 우리는 정보를 얻기 위해 ‘검색’이라는 행위를 했고, 스마트폰 시대에는 필요한 기능을 위해 ‘앱(App)’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인공지능 기술, 특히 거대언어모델(LLM)의 발전은 이러한 디지털 상호작용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이제 사용자는 수많은 앱을 설치하고 그 기능을 일일이 익힐 필요가 없습니다. AI에게 자연어로 명령만 내리면, AI가 스스로 판단하여 적절한 앱을 실행하거나 필요한 정보를 종합해 결과물을 도출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이른바 ‘AI 에이전트(Agent)’ 시대로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복잡한 사업 계획서 작성을 지시하면 AI가 자료 조사부터 전략 수립, 보고서 작성까지 모든 과정을 수행합니다. 심지어 코딩 지식이 없는 사람도 말로써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바이브 코딩(Vibe Coding)’이 가능해졌습니다. 이는 기존의 검색 중심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기업들에게는 중대한 위기이자,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선점하는 기업들에게는 강력한 기회가 됩니다. 일부에서는 인간의 지능이 퇴화할 것이라는 우려를 표하기도 하지만, 과거 문자의 발명이나 계산기의 등장 때와 마찬가지로 AI 역시 인간이 독립적인 사고를 유지하며 활용한다면 강력한 지적 도구로 기능할 것입니다.

미래 제조 강국의 히든카드: ‘숙련공 데이터’가 AI를 만날 때

소프트웨어 중심의 AI 경쟁에서 빅테크 기업들이 앞서 나가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직 누구도 선점하지 못한, 새로운 가능성의 영역이 존재합니다. 바로 로봇과 결합된 ‘피지컬 AI(Physical AI)’ 분야입니다. 현재의 AI는 주로 텍스트, 이미지, 영상과 같은 디지털 데이터를 학습하여 발전해 왔습니다. 하지만 로봇이 현실 세계에서 정교하게 움직이고 복잡한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움직임 데이터(Action Data)’가 필수적입니다.

흥미롭게도 미국이나 유럽 등 서구 선진국들은 이미 제조업 기반이 약화되어 숙련된 현장 노동자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이는 로봇에게 고난도의 용접이나 조립 기술을 가르칠 ‘데이터 원천(스승)’이 부재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 대한민국은 조선, 반도체, 자동차 등 세계적인 수준의 제조업 기반을 굳건히 유지하고 있으며, 수십 년간 현장에서 기술을 연마해 온 ‘숙련공(Master)’들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들이 은퇴하기 전에 고글과 센서와 같은 기술을 활용하여 그들의 미세한 움직임과 노하우를 데이터화할 수 있다면, 이는 전 세계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대한민국만의 독보적인 자산이 됩니다.

마치 미국이 GPU로, 중국이 희토류로 기술 패권을 쥐듯이, 대한민국은 ‘숙련된 장인의 움직임 데이터’를 통해 피지컬 AI 시대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제조업을 포기하지 않고 지켜온 결과가 가져다준, AI 시대의 가장 강력하고도 의외의 생존 무기가 될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에 대한민국이 어떤 가치를 창출하며 나아갈지 주목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