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이 나의 뇌를 공격한다? 기억력 감퇴 뒤에 숨겨진 진짜 적, 자가면역

어느 날부터인가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끼시나요? 머릿속이 뿌옇게 흐려지는 ‘뇌 안개’ 현상이나 이유 없는 불안감, 피로감에 시달리고 있다면, 많은 분들이 이를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으로 받아들이곤 합니다. 하지만 만약 이러한 증상들의 근본 원인이 나이 탓이 아니라, 우리 몸을 지켜야 할 아군, 즉 ‘면역계’의 오작동 때문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 몸의 면역계가 외부의 적이 아닌 우리 자신의 신체 조직, 특히 가장 중요한 기관인 ‘뇌’를 공격하는 상태를 자가면역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 몸속에서 수년간 누구도 모르게 진행될 수 있는 소리 없는 전쟁과 같습니다. 오늘은 기억력 감퇴와 뇌 기능 저하의 숨겨진 주범이 될 수 있는 자가면역 반응에 대해 깊이 있게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뇌건강과 자가면역질환

우리 몸의 수호 군대, 면역계의 두 얼굴

우리 면역계는 외부의 침입자로부터 우리 몸을 지키는 정교하고 강력한 군대와 같습니다. 이 군대에는 두 종류의 부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모든 위협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염증이라는 총알을 발사하는 ‘선천 면역계’입니다. 이들은 우리 몸의 일차 방어선인 셈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힘만으로 위협이 제거되지 않으면, 면역계는 더 강력한 무기, 즉 ‘대포’를 동원합니다. 이것이 바로 ‘적응 면역계’로, 이들은 ‘항체’라는 이름의 정밀 유도 미사일을 만들어 특정 침입자를 정확히 표적하여 공격합니다. 혈액 검사에서 ‘항체 수치 상승‘이라는 결과를 보았다면, 이는 이미 일차 방어선이 뚫려 우리 몸의 특수부대가 출동했다는 의미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우리 몸에서 가장 강력한 면역 부대가 바로 뇌 안에 있는 ‘교세포’라는 점입니다. 이들은 뇌를 보호하기 위해 일반 권총이 아닌 바주카포 수준의 막강한 화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꺼지지 않는 불, 만성 염증이 뇌를 태웁니다

염증은 본래 상처가 났을 때 그 부위가 붉어지고 부어오르는 것처럼, 우리 몸을 치유하기 위한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문제는 이 염증의 불길이 꺼지지 않고 만성적으로 지속될 때 발생합니다. 마치 조명 스위치가 고장 나 계속 켜져 있는 것처럼, 우리 몸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특정 요인에 계속 노출되면 염증 반응이 멈추지 않습니다.

이 만성 염증은 ‘염증성 연쇄반응’이라는 무서운 도미노 현상을 일으킵니다. 작은 세포 손상에서 시작된 염증이 조직 손상으로, 다시 장기 손상으로 이어지며 결국에는 우리가 병이라고 인지하는 뚜렷한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때 염증은 우리 몸의 유전적인 ‘가장 약한 고리’를 공격하게 됩니다. 만약 그 약한 고리가 관절이라면 관절염이, 갑상선이라면 갑상선 기능 저하증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가장 약한 고리가 뇌라면, 두통, 기억 상실, 불안, 우울증, 심하게는 치매나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뇌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40~50대에 뇌 기능이 떨어지는 것은 결코 정상적인 노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몸 어딘가에서, 특히 뇌 안에서 자가면역 반응이 일어나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일 수 있습니다.

신원 오인 사건: 음식이 어떻게 뇌 공격을 유발하는가

그렇다면 무엇이 면역계를 혼란에 빠뜨려 자기 자신을 공격하게 만드는 것일까요? 가장 흔한 원인 중 하나는 바로 ‘분자 모방(Molecular Mimicry)’이라는 현상입니다. 이는 면역계가 외부 침입자와 우리 몸의 조직을 혼동하여 둘 다 공격하는, 말 그대로 ‘신원 오인’ 사건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밀(글루텐)입니다. 단백질을 진주 목걸이라고 상상해 봅시다. 소화 효소는 이 목걸이를 각각의 진주알(아미노산)로 잘라내는 가위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우리 몸에는 밀 단백질을 완벽한 진주알 단위로 잘라내는 효소가 없습니다. 그래서 ‘펩티드’라는 여러 개의 진주알이 엮인 덩어리 형태로 남게 되는데, 면역계는 이 덩어리를 위협으로 인식하고 항체를 만듭니다.

문제는, 밀 펩티드의 아미노산 서열(예: A-A-B-C-D)이 우리 뇌의 소뇌나 신경 세포를 감싸는 수초 조직의 아미노산 서열과 매우 비슷하다는 점입니다. 결국 밀을 공격하기 위해 만들어진 항체는 혈류를 타고 다니다가 비슷한 모습을 한 우리의 뇌 조직까지 적으로 오인하여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공격이 매일같이, 수십 년에 걸쳐 일어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매일 500개의 뇌세포가 죽는 것은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20년이 지나면 364만 개의 세포가 사라지며, 이는 뇌 기능의 약 20%에 해당하는 손실입니다. 3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열쇠를 어디에 뒀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현상은 바로 이러한 메커니즘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소리 없는 전쟁에서 능동적인 건강 관리로

자가면역 질환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눈에 띄는 증상이 나타나기 수년, 혹은 수십 년 전부터 혈액 속에서는 항체 수치가 서서히 증가하며 소리 없이 우리 몸의 조직을 파괴하는 ‘자가면역 스펙트럼’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희망은 있습니다. 우리는 이 끔찍한 질병이 발현될 때까지 속수무책으로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내 몸이 나의 뇌를 공격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방아쇠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식단을 포함한 생활 습관을 점검하여 염증의 불길에 ‘휘발유를 붓는’ 행위를 멈추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뇌 건강의 흐름을 바꿀 수 있습니다.

지금 겪고 있는 뇌의 불편한 증상들이 단순한 노화가 아닌, 내 몸이 보내는 절박한 구조 신호일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 신호에 귀 기울이고 근본 원인을 찾아 해결하려는 노력을 시작할 때, 우리는 비로소 뇌 건강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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