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호르몬 대사 장애에 대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
어릴 적 키 크는 게 전부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줄넘기보다 ‘우유’가 키를 크게 한다는 말에 무조건 따랐고, 병원에서 성장판 검사를 받던 아이들도 적지 않았죠.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키에 대한 집착은 줄어드는 반면, ‘성장호르몬’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뉴스나 건강 프로그램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많은 분들이 ‘성장호르몬’ 하면 키에만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지만, 그 역할은 상상 이상으로 광범위합니다. 그리고 이 호르몬의 작용에 문제가 생기면 단지 성장이 느려지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신진대사, 감정, 인지 기능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성장호르몬은 단지 ‘키 크는 호르몬’이 아닙니다
성장호르몬은 ‘GH(Growth Hormone)’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뇌 속의 뇌하수체라는 기관에서 분비됩니다. 이 호르몬은 단순히 키를 자라게 하는 것을 넘어서, 단백질 합성, 지방 분해, 혈당 조절, 면역력 강화 등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기능을 담당합니다.
문제는 이 호르몬이 ‘얼마나 나오느냐’보다도 ‘어디서, 어떻게 작용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몸은 성장호르몬이 분비되면 간에서 IGF-1(인슐린유사성장인자-1)이라는 또 다른 호르몬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 IGF-1이야말로 실제로 세포 성장과 재생을 일으키는 ‘실행자’입니다. 즉, 성장호르몬이 아무리 잘 분비되어도 IGF-1이 제대로 생성되지 않거나, 세포가 IGF-1을 인식하지 못하면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성장호르몬 대사 장애’입니다.
호르몬은 잘 나오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을 때
성장호르몬 대사 장애는 ‘호르몬 저항성’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시면 쉽습니다. 마치 당뇨병에서 인슐린이 있지만 몸이 반응하지 않는 것처럼, 성장호르몬이 충분하더라도 간이 제대로 반응하지 않거나, IGF-1의 수용체가 망가진 경우, 몸은 마치 성장호르몬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성장지연은 물론이고, 지방이 잘 쌓이고 근육이 잘 생기지 않으며, 정서적으로는 무기력하고 우울한 경향까지 나타날 수 있습니다. 특히 청소년기에 이런 장애가 생기면 단순히 키가 작은 정도를 넘어서 사회적 위축과 자존감 저하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조기 진단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성장판 검사보다 중요한 ‘호르몬 기능’ 검사
많은 분들이 아이의 키가 걱정되면 성장판 검사를 먼저 받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뼈의 성장 가능성이 남아 있어도 호르몬이 제대로 작용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성장판을 확인하는 X-ray보다, 성장호르몬과 IGF-1 수치, 그리고 이들의 수용체 반응까지 확인하는 ‘기능성 호르몬 검사’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 검사를 통해 단순히 분비량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호르몬이 실제로 몸에서 효과를 내는지까지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성장호르몬 주사 같은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할 부분입니다.
어른도 성장호르몬이 필요합니다
놀랍게도 성장호르몬은 성장을 다 마친 성인에게도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특히 근육량 유지, 체지방 조절, 뼈 건강, 심지어 기억력과 감정 조절까지 이 호르몬의 영향을 받습니다. 따라서 성인이 되어서도 이유 없는 피로감, 기억력 저하, 근육 손실이 지속된다면 성장호르몬의 기능 저하를 의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에는 항노화 클리닉 등에서 ‘성장호르몬 최적화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중년층에게도 호르몬 기능을 점검하고 조절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다만 자가진단이나 무분별한 약물 사용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반드시 전문가의 진료를 통해 진행되어야 합니다.
성장호르몬에 대한 오해, 이제는 바로잡아야 할 때입니다
성장호르몬은 단지 키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몸 전체의 생명력과 회복력, 그리고 삶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신호체계입니다. 특히 그 기능이 정상이더라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그만큼 치명적인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나오는가’보다는 ‘어디서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할 시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