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인공지능의 핵심 부품으로 떠오른 GPU(Graphics Processing Unit)는 이제 단순한 그래픽 처리용 칩을 넘어, 국가 간 전략자산이자 기업 간 핵심 무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2024년과 2025년을 지나며 GPU 확보 경쟁은 기술 산업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 속도와 양상이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GPU는 왜 이렇게 중요한가?
인공지능 모델의 학습과 추론에는 막대한 연산 자원이 필요합니다. 특히 초거대 언어모델처럼 수십억 개의 매개변수를 가진 AI를 학습시키기 위해서는 일반 CPU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병렬 연산 능력이 요구됩니다. 이때 GPU는 대량의 데이터를 동시에 처리하는 병렬 연산 구조를 갖고 있어 AI 연산에 최적화된 하드웨어로 꼽히고 있습니다.
현재 GPT-5, Gemini 1.5, Claude 3 등 최첨단 AI 모델들은 수천 개에서 수만 개의 GPU가 동원되는 데이터센터 위에서 작동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누가 더 많은 GPU를, 더 빠르게, 더 효율적으로 확보하느냐가 AI 기술의 우위를 가르는 핵심 조건이 된 것입니다.
기업 간 GPU 확보 경쟁: NVIDIA 독주와 새로운 변수들
GPU 시장의 절대 강자는 단연 NVIDIA입니다. AI 연산에 최적화된 H100, A100, GH200 등의 GPU는 현재 클라우드 기업과 AI 스타트업들의 필수 장비로 자리잡았습니다. OpenAI, Google, Meta, Microsoft 등 주요 기업들은 NVIDIA의 GPU를 대량 구매하며 AI 경쟁력을 확보하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NVIDIA의 독점적 지위에 대한 부담도 커지고 있습니다. GPU 수요가 폭증하면서 공급 병목 현상이 발생했고, 이에 따라 가격 또한 천정부지로 치솟았습니다. 이로 인해 다양한 기업들이 대체재 개발에 나서거나 자체 칩 개발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Google은 자체 AI 칩인 TPU(Tensor Processing Unit)를 활용해 GPU 의존도를 줄이려 하고 있고, Amazon AWS 역시 Trainium, Inferentia 등의 전용 AI 칩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Meta는 NVIDIA 외에도 AMD, Intel 등과 협력하여 자체 인프라 다변화를 꾀하고 있으며, Microsoft 역시 최근 자체 AI 칩 Maia를 발표하며 탈NVIDIA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와 xAI의 GPU 전쟁 가세
2024년 말부터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xAI가 본격적으로 AI 모델 경쟁에 뛰어들면서 GPU 확보 전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습니다. xAI는 자체 개발한 Grok 시리즈의 성능 향상을 위해 NVIDIA H100 GPU 10만 개 이상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는 단일 기업으로서도 최대 규모 중 하나로 평가되며, 테슬라, 트위터(X), 스타링크 등 머스크가 보유한 다양한 플랫폼과 연계된 거대 AI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기반으로 해석됩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단순한 기술 확보를 넘어, 독자적 AI 인프라를 구축하려는 전략의 일환이며, GPU를 통한 기술 주도권 확보가 앞으로 더욱 중요한 이슈로 부상할 것임을 보여줍니다.
국가 간 경쟁: 반도체와 안보가 만나다
GPU는 이제 기술 경쟁을 넘어 국가 안보 및 경제 전략과도 직결되는 문제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자국의 기술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중국에 대한 GPU 수출을 제한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으며, 이는 중국의 AI 산업 성장에 직접적인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에 맞서 중국은 화웨이, 바이두, 텐센트 등을 중심으로 자체 GPU 및 AI 가속기 개발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최근 공개된 Ascend 910B나 Kunlun 시리즈는 미국의 제재 속에서도 중국이 독자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시도의 일환입니다.
한편, 한국, 대만, 유럽연합 등도 반도체 및 GPU 공급망 확보를 위해 대규모 투자와 인센티브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의 역량을 바탕으로 차세대 메모리와 연산용 반도체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하려 하고 있습니다.
GPU 확보는 단지 기업의 기술력이 아닌 국가의 미래 경쟁력과 직결되는 사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공급망 재편, 기술 내재화, 전략적 동맹 등 종합적인 정책이 요구되고 있으며, AI 초강대국 경쟁에서 GPU는 필수 자원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전망과 과제
GPU 경쟁은 단순한 하드웨어 싸움을 넘어서, 에너지 효율성, 생산 안정성, 칩 설계 혁신 등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전쟁입니다. 특히 AI 성능이 올라갈수록 연산 요구량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차세대 GPU는 단순히 빠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친환경적이고 안정적인 구조를 갖춰야 할 것입니다.
또한, 각국의 수출 규제와 지정학적 리스크는 앞으로 GPU 공급망에 불확실성을 더욱 가중시킬 수 있습니다. 기업들은 단기적 GPU 확보와 동시에, 중장기적으로는 다양한 하드웨어 생태계 구축, 자체 기술 내재화, 전략적 제휴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습니다.
GPU 전쟁의 최종 승자, 그것은 기술을 넘어 전략과 협력의 역량에 달려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