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가장 좋아하던 음식의 맛과 향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껴본 적이 있으신가요? 요리할 때 평소보다 양념을 더 넣어야 익숙한 냄새가 난다고 생각하신 적은 없으신지요? 우리는 흔히 이런 변화를 나이 탓으로 돌리곤 합니다. 하지만 코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냄새를 잘 맡지 못하게 되는 것은, 사실 우리 뇌가 보내는 중요한 신호일 수 있습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70세 이상 노인이 후각을 잃으면 향후 5년 내 사망 위험이 48%나 증가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사소해 보이는 감각의 변화는 우리 뇌 기능이 서서히 약화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경고등일 수 있습니다.

뇌를 지키는 최후의 방어선, 혈액뇌장벽
우리 뇌에는 혈액뇌장벽(Blood-Brain Barrier)이라는 아주 특별하고 정교한 보호 시스템이 있습니다. 이는 뇌로 들어가는 혈액 속 물질들을 걸러내는 매우 촘촘한 ‘거름망’과 같습니다. 소화관에도 비슷한 거름망이 있지만 , 뇌의 거름망은 훨씬 더 미세하여 아주 작은 분자들만 통과시킵니다. 이 방어벽의 주된 역할은 혈액을 통해 들어올 수 있는 큰 분자들이나 독소, 자극 물질들이 민감한 뇌 조직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 견고한 방어벽, 즉 뇌의 거름망이 손상되어 찢어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이 상태를 ‘혈액뇌장벽 손상(Breach of the Blood-Brain Barrier, B4)’, 또는 이해하기 쉽게 ‘새는 뇌(Leaky Brain)’라고 부릅니다. 말 그대로 뇌의 방어벽에 구멍이 뚫려, 평소에는 들어갈 수 없었던 해로운 물질들이 뇌 속으로 침투하게 되는 위험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무엇이 뇌의 방어벽을 무너뜨리는가?
그렇다면 무엇이 이토록 중요한 뇌의 방어벽을 무너뜨리는 것일까요? 원인은 생각보다 우리 생활 가까이에 있습니다.
첫째는 물리적인 충격입니다. 뇌진탕과 같은 큰 외상뿐만 아니라 , 축구 연습 중에 헤딩을 하거나 마라톤 같은 극한의 운동을 반복하는 것과 같은 작은 외상들이 쌓여도 거름망은 찢어질 수 있습니다.
둘째는 우리 몸 내부에서 발생하는 만성적인 염증입니다. 특히 밀이나 유제품 같은 특정 식품에 민감한 경우, 우리 몸의 면역계가 이들 식품 분자를 공격하기 위해 만든 항체로 인한 염증이 혈액뇌장벽을 손상시킬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상치 못한 원인도 있습니다. 바삭하게 구운 빵 껍질이나 까맣게 탄 고기, 크렘 브륄레 디저트의 달콤한 캐러멜 표면에서 생성되는 ‘최종당화산물’이라는 새로운 분자 역시 장과 뇌의 거름망을 손상시켜 ‘새는 뇌‘ 현상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뇌가 새기 시작할 때 벌어지는 일들: 염증의 연쇄 반응
혈액뇌장벽이 한번 뚫리면(B4), 뇌 안에서는 심각한 연쇄 반응이 시작됩니다.
- 평소라면 걸러졌을 거대 분자들이 혈류를 통해 뇌 조직으로 침투합니다.
- 뇌의 면역을 담당하는 ‘교세포’들이 이 침입자들을 발견하고 비상사태로 인식합니다. 이 교세포들은 마치 바주카포를 쏘듯 강력한 화학 총탄을 발사하여 침입자들과 싸우기 시작합니다.
- 이 과정에서 침입자뿐만 아니라 주변의 건강한 뇌 조직까지 손상되는 ‘부수적 손상‘이 발생하며 염증이 퍼져나갑니다.
- 우리 몸의 면역계는 이 손상된 뇌 조직을 제거하기 위해 새로운 항체, 즉 자신의 뇌를 공격하는 ‘자가 항체‘를 만들어냅니다.
- 이러한 자가 항체의 증가는 간단한 혈액 검사로 확인할 수 있으며, 이는 뇌 안에서 자가면역 반응이 진행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 과정에서 ‘분자 모방’이라는 매우 중요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밀 단백질의 특정 구조(A-A-B-C-D)가 우리 소뇌 조직의 구조와 매우 유사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밀을 공격하기 위해 만들어진 항체가 우리 소뇌를 밀로 착각하여 공격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특정 음식을 먹은 후에 뇌 안개, 불안감, 어지럼증 같은 뇌 기능 장애가 나타나는 가장 흔한 원인 중 하나입니다.
뇌로 가는 혈액이 부족할 때: 관류 저하의 위험
‘새는 뇌’를 유발하는 또 다른 핵심적인 요인은 뇌로 가는 혈류량이 줄어드는 ‘관류 저하’ 상태입니다. 뇌에 혈액 공급이 부족해지면, 뇌는 스스로 염증을 만들어 신경 조직을 파괴하기 시작합니다. 이로 인해 메시지 전달에 오류가 생기면서 “내가 열쇠를 어디에 뒀더라?”와 같은 건망증이 나타나거나, 불안과 우울증에 더 취약해질 수 있습니다.
한 연구에서는 자폐증 아동의 75%가 뇌 혈류량 부족을 겪고 있으며, 혈류가 부족한 뇌의 특정 영역이 반복적인 행동 패턴이나 사회적 상호작용의 어려움 같은 증상과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글루텐을 소화하지 못하는 셀리악병 환자의 73%가 관류 저하를 겪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하지만 희망적인 소식은, 이 환자들이 밀을 끊는 식단을 1년간 유지하자 대부분의 뇌 혈류와 뇌 기능 장애 증상이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뇌 건강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방어벽과 혈액 순환에 깊이 의존하고 있습니다. 사소한 기억력 감퇴나 감각의 변화를 단순히 넘기기보다는, 우리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를 기울이고 그 근본 원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뇌의 방어벽을 튼튼히 하고 원활한 혈액 순환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맑고 건강한 뇌를 지키는 첫걸음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