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력은 무조건 높을수록 좋다”는 위험한 오해

“면역력을 높이세요”라는 말을 우리는 참 자주 듣습니다. 마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섭취하고 특정 행동을 반복해야 할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감기를 예방하기 위해 비타민C를 찾고, 홍삼을 챙기며, 따뜻한 물로 반신욕을 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과연 면역력은 무조건 높을수록 좋은 것일까요?

많은 분들이 ‘면역력은 높을수록 좋다’는 착각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 인체의 면역 시스템은 생각보다 훨씬 정교하며, 미세한 균형 위에 복잡하게 작동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면역 활동의 중심에는 ‘혈액’이라는 놀라운 생명 유지 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단순한 액체가 아닌 생명의 시스템, 혈액

우리는 혈액을 흔히 ‘피’라고 부르며, 그저 심장을 통해 몸속을 순환하는 붉은 액체 정도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혈액은 단순한 액체가 아닙니다. 혈액은 산소와 영양분을 우리 몸 구석구석으로 운반하고, 불필요한 노폐물을 효율적으로 제거하며, 우리 몸의 체온을 일정하게 조절하고, 가장 핵심적으로는 강력한 면역 기능을 수행하는 다기능 생명 유지 시스템입니다.

혈액 속에는 다양한 구성 성분들이 존재합니다. 대표적으로는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 외부 침입자에 맞서는 백혈구, 지혈 작용을 담당하는 혈소판, 그리고 이 모든 성분들을 실어 나르는 액체 성분인 혈장이 있습니다. 특히 이 중 백혈구는 면역계의 핵심 병사로서, 우리 몸에 침투한 바이러스나 세균과 같은 외부 침입자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이를 제거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백혈구 수가 많다고 해서 면역력이 무조건적으로 강한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면역 반응이 과도하게 나타날 경우, 이는 알레르기 반응이나 류마티스성 질환과 같은 자가면역질환을 유발하여 우리 몸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면역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특정 수치의 높고 낮음이 아니라, 바로 ‘균형’입니다.

비타민C와 알레르기, 면역에 대한 불편한 진실

건강보조제 광고에서 빠지지 않는 문구 중 하나는 바로 “면역력 강화에 도움을 줄 수 있음”이라는 말입니다. 특히 비타민C는 면역력 증진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말은 과학적으로 어디까지 사실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비타민C는 우리 몸이 결핍 상태에 있을 때 면역 기능이 저하되는 것을 예방하는 데는 분명히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비타민C가 충분한 상태에서 추가적으로 고용량을 복용한다고 해서 면역력이 드라마틱하게 더 상승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고용량의 비타민C를 장기간 복용할 경우, 위장 장애를 유발하거나 신장 결석의 위험을 높일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면역력은 단순히 어떤 ‘특정 물질’을 더 많이 섭취한다고 해서 급격히 강화되거나 유지되는 것이 아니며, 이는 우리 몸 전체의 생활 습관과 혈액 내 면역세포들의 정교한 균형과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또한, 종종 “알레르기가 심한 건 면역력이 약해서 그런 거야”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면역에 대한 잘못된 이해입니다. 알레르기는 면역력이 부족하거나 약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이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은 외부 침입자를 인식하고 제거하는 방향으로 작동해야 합니다. 그런데 꽃가루나 미세먼지처럼 원래는 우리 몸에 해롭지 않은 물질에 대해서까지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이 과도하게 반응할 때, 몸은 과도한 히스타민 분비를 통해 염증 반응을 일으키게 됩니다. 즉, 알레르기는 ‘과잉 면역’의 결과이며, 면역력 부족과는 정반대의 메커니즘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강화가 아닌 ‘조절’, 면역 균형의 지혜

우리 몸의 면역세포 중 자연살해세포(NK세포)는 암세포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를 직접 찾아내어 죽이는 강력한 전사입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많은 건강식품들이 NK세포의 활성화를 강조하며 홍보됩니다. 그러나 NK세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지나치게 활성화될 경우, 정상세포까지 적으로 인식하여 공격할 수 있는 위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루푸스나 류마티스 관절염과 같은 일부 자가면역질환에서는 면역세포들이 자신의 신체 조직을 적으로 잘못 인식하고 공격하게 됩니다. 이처럼 면역세포의 ‘활성화’는 상황에 따라 득보다 실이 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면역력을 무조건적으로 올리려 하기보다, 정교하게 조절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그리고 그 조절의 중심에는 혈액과 다양한 면역세포들 간의 끊임없는 소통과 협력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백혈구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며, 각자 맡은 역할이 다르고, 서로의 활동을 조절하는 사이토카인이라는 신호 물질 또한 복잡하게 오고 갑니다. 이처럼 정교하게 설계된 면역 시스템이 작은 불균형에 빠지기라도 하면 염증, 자가면역질환, 만성피로 등 다양한 형태로 우리 몸에 이상 신호를 보내게 됩니다.

따라서 진정한 건강 관리는 면역력을 맹목적으로 ‘강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이 최적의 균형을 유지하도록 균형 있는 식사, 규칙적이고 적절한 운동, 충분한 수면, 그리고 현명한 스트레스 관리를 통해 조율하는 데에 그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건강하고 활력 넘치는 삶을 위한 면역 균형의 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