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스스로를 “하나의 나”라고 느끼며 삽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나”라는 존재는 단일한 고정체가 아니라, 사실은 수많은 감각 정보, 기억, 생각, 감정, 그리고 이야기들이 얽히고설킨 복잡한 소통의 장입니다. 이 글에서는 우리의 의식이 가진 본질적 특성과, 뇌가 만들어내는 일종의 환상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의식은 하나가 아니다
의식이란 단순히 ‘생각하는 나’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우리는 경험하는 ‘지금 여기의 나(경험자아)’, 이를 기억하고 이야기로 엮는 ‘기억자아’,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알아차리는 ‘배경자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배경자아는 마치 하늘 같아서 아무리 구름(생각, 감정)이 떠올라도 본래의 맑음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보통 이 세 자아 중 경험자아와 기억자아만을 자신이라 착각합니다. 그러나 이 두 자아는 늘 순간순간 변화하며, 생각과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좌충우돌합니다. 명상과 같은 마음 훈련이 중요한 이유는, 그 뒤편에 언제나 고요히 존재하는 배경자아를 인식하고 그 자각 속에서 진정한 평온을 찾기 위함입니다.
뇌가 만들어내는 단일성의 환상
의식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는 ‘단일성’입니다. 나는 항상 “하나의 나”로 세상과 마주한다고 느끼죠. 하지만 뇌과학적으로 보면, 뇌는 다양한 감각, 신체, 정서, 인지 정보를 실시간으로 통합해 마치 하나의 흐름인 것처럼 재구성하는 탁월한 이야기꾼입니다. 이 재구성이 깨지면 우리는 혼란, 심지어 정신질환에 빠지게 됩니다.
여기에 뇌가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환상이 있습니다. 우리는 마치 바깥세상이 그대로 우리에게 전달된다고 믿지만, 사실은 뇌가 생존을 위해 재해석하고 왜곡한 세계를 보고 듣고 느끼는 것입니다. 뇌는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 감각정보를 그대로 두지 않고, 필요에 맞게 의미를 부여하고 편집합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보는 세상은 뇌가 만들어낸 ‘가상현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생각과 감정, 그리고 의식의 속임수
뇌의 기본 작동방식은 ‘능동적 추론’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측하고, 그 예측에 맞는지 확인하며, 틀리면 고쳐가며 세상을 인식합니다. 이 과정은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기에, 우리는 마치 외부 현실이 그대로 우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처럼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과거 경험, 몸의 감각, 사회적 언어를 통해 끊임없이 세상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느끼는 고통이나 불안, 분노 같은 감정도 결국 뇌가 특정 신체 감각이나 상황을 해석하는 방식에서 발생합니다. 그 해석을 바꾸면 감정의 색깔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명상, 마음 훈련의 핵심 원리입니다. 나의 내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배경자아로써 알아차릴 수 있을 때, 우리는 생각과 감정의 자동화된 속임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내가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이유
흥미로운 점은, 이처럼 자동화된 뇌의 작동을 우리가 훈련을 통해 바꿀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 후성유전학(epigenetics) 같은 최신 과학은, 우리의 뇌가 환경과 훈련, 반복을 통해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제한된 자기이미지를 뛰어넘게 합니다.
결국 의식이란, 그리고 ‘나’란, 고정된 실체가 아닙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재조직되고 이야기로 엮어지며, 언제나 새로운 가능성 위에 서 있는 열린 과정입니다. 뇌가 만들어내는 환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위에서 내가 주체적으로 새로운 내면소통을 시도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한 자기변화와 자유에 다가설 수 있습니다.
나는 소통한다, 고로 존재한다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뇌과학과 마음공부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존재는 생각만이 아니라 끊임없는 소통, 특히 내면소통의 결과입니다. 내면소통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각, 감정, 신체, 환경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그 과정 속에서 ‘나’라는 존재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내면의 소통을 강화하고, 배경자아로서 모든 것을 고요히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기를 때, 우리는 뇌가 만들어내는 환상 속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마음공부의 핵심은, 내가 나를 새롭게 바라보고 변화시키려는 열린 용기에서 시작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