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아침에 어떤 옷을 입을지,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지, 퇴근 후 어떤 영화를 볼지. 이 모든 선택은 내가 자유롭게 내린 결정일까요? 아니면 이미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것일까요?
‘결정론’과 ‘자유의지’라는 오래된 철학적 논쟁은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이 글에서는 이 두 개념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여전히 우리 삶에 중요한 문제인지 하나씩 풀어보겠습니다.

결정론과 자유의지

결정론: 모든 것은 이미 정해져 있다?

결정론(determinism)은 세상의 모든 사건, 심지어 인간의 생각과 행동까지도 원인과 결과의 사슬에 따라 반드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마치 도미노가 하나 넘어지면 연이어 다른 도미노들도 순서대로 넘어지듯, 우리가 내리는 모든 선택도 이전의 사건과 환경, 유전자, 뇌의 상태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죠.

과학에서도 결정론의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뉴턴의 고전 물리학은 우주를 거대한 시계 장치처럼 설명합니다. 모든 행성과 별들의 움직임은 일정한 법칙에 따라 예측 가능하죠. 인간도 이 자연 법칙 안에 있다면, 우리의 선택도 이미 정해진 경로를 따라가는 것일까요?

하지만 현대 과학, 특히 양자역학에서는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미시 세계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이 존재합니다. 그러니 결정론은 과연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자유의지: 우리는 선택할 수 있는 존재인가?

자유의지(free will)는 인간이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라는 믿음입니다. 만약 자유의지가 없다면, 우리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책임지는 것 역시 의미가 없겠죠. 예를 들어, 법적인 책임도, 도덕적인 판단도 모두 무의미해집니다.

하지만 결정론이 맞다면 자유의지는 환상에 불과할까요? 사실 이 질문은 수많은 심리학자와 신경과학자들의 연구 주제가 되어왔습니다.
1970년대 벤자민 리벳이라는 뇌과학자는 실험을 통해 우리가 행동을 ‘의식적으로’ 결정하기 전에 이미 뇌가 움직임을 준비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이 실험은 자유의지의 존재를 위협하는 듯 보였죠.

하지만 이 실험이 곧바로 자유의지의 부정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뇌가 먼저 준비한다고 해도, 우리는 그 선택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는 후속적인 결정권을 가진 것 아니냐는 반론도 있습니다. 자유의지는 어쩌면 ‘행동을 멈출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의 힘인지도 모릅니다.

양립 가능한가? 결정론적 세계에서의 자유의지

그렇다면 결정론과 자유의지는 절대 양립할 수 없는 걸까요?
여기서 ‘양립 가능론(compatibilism)’ 이라는 흥미로운 입장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우리가 결정론적인 세계에 살고 있어도 자유의지를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자유의지가 의미하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지, “그 의지가 어디서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죠.

즉, 내 선택이 외부의 강압이나 억압 없이 내 욕구와 생각에서 비롯된다면, 설령 그 욕구와 생각이 과거의 경험이나 유전자에 의해 형성되었더라도 우리는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치 나는 내가 원하는 영화를 선택하는 것처럼 느끼지만, 그 영화 취향은 어릴 적 경험이나 주변 환경에서 비롯되었을지라도요.

우리는 어떤 입장을 선택할까?

결국 이 논쟁은 단순히 철학적인 호기심을 넘어서, 우리가 스스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왜 이런 선택을 하는지, 그리고 그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죠.

결정론이 맞을 수도, 자유의지가 맞을 수도 있습니다. 또는 둘 다 부분적으로 맞고 틀릴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논쟁이 우리가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점입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어떤 입장인가요? 모든 것이 이미 정해져 있다고 느끼시나요, 아니면 지금 이 순간도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결정론과 자유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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