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와 진실 사이에서 균형 찾기
한때 생식(生食), 즉 익히지 않은 음식을 먹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주장이 큰 인기를 끈 적이 있었습니다. 자연 상태에 가까운 음식을 그대로 섭취하면 영양소 파괴를 막고 효소를 그대로 섭취할 수 있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죠. 많은 사람들이 ‘덜 가공할수록 더 건강하다’는 인식 아래 생채소, 생곡물, 심지어 생고기까지 적극적으로 섭취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생식이 무조건 건강에 좋다는 믿음은 과연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일까요? 이 글에서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생식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정확한지, 오해와 진실을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익혀야 하는 이유가 있다
생식이 몸에 좋다고 믿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효소’ 때문입니다. 익히지 않은 음식에는 자연 효소가 살아 있어서 소화에 도움을 준다는 주장이 있지요. 하지만 우리 몸은 소화에 필요한 효소를 스스로 충분히 만들어냅니다. 음식의 효소가 우리 몸에서 실제로 얼마나 기능을 할 수 있는지는 매우 제한적입니다. 소화기관을 거치며 대부분의 외부 효소는 위산에서 변성되어 기능을 잃기 때문이죠.
더욱이 익히지 않은 음식은 소화 흡수에 오히려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특히 소화력이 약한 아이, 노인, 또는 장기 질환이 있는 분들에게는 생식이 장을 자극하고 염증을 유발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 몸은 익힌 음식을 더 부드럽게 소화하고, 흡수율도 높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식물도 자기 몸을 지키려 한다
생식으로 자주 섭취되는 곡물이나 콩류, 견과류에는 ‘항영양소’라는 성분들이 있습니다. 이는 식물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방어물질로, 렉틴, 피틴산, 트립신 억제제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들은 우리 몸에서 단백질 소화 효소를 방해하거나, 칼슘·철·아연 같은 미네랄의 흡수를 방해하는 작용을 합니다.
이런 항영양소는 ‘가열’이라는 조리 과정을 통해 대부분 없애거나 무력화할 수 있습니다. 즉, 익히는 행위는 단순한 편의나 맛의 문제가 아니라, 식품을 우리 몸이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바꾸는 중요한 과정이라는 말입니다.
생식으로 인한 부작용도 있다
생식을 꾸준히 실천하던 분들 중에는 어느 순간부터 복통, 설사, 혹은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는 익히지 않은 채소나 곡물 속에 남아 있는 미생물, 혹은 소화되지 못한 잔여물이 장에서 염증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특히 채소 위주로 생식을 하는 분들은 단백질, 지방 등 필수 영양소가 부족해지는 경우가 많고, 장기적으로는 근육 감소, 면역력 저하, 체력 저하 등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생채소를 매 끼니마다 많이 먹으면서도 기운이 없고, 소화불량에 시달리는 분들이 그렇습니다.
자연 그대로가 늘 옳은 건 아니다
우리는 자연이 주는 식재료를 소중히 여기고, 가능한 인공적인 가공을 줄이려는 마음은 분명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익히지 말자’, ‘자연 그대로 먹자’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건 위험합니다. 자연식과 생식은 구분되어야 하며, 익힘을 통해 더 안전하고 건강하게 섭취할 수 있는 방법이 충분히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브로콜리는 살짝 데쳐 먹을 때 설포라판 같은 항산화 물질의 흡수율이 오히려 높아지고, 토마토는 익혔을 때 리코펜이라는 항암 성분의 생체 이용률이 올라갑니다. 또한, 조리는 식품의 맛과 향을 살리고, 식욕을 증진시키는 작용도 하므로 정신적인 만족감도 큽니다.
생식을 지양하라는 말이 아니다
생식이 나쁘다는 말은 아닙니다. 적절한 생채소 섭취는 장에 좋은 섬유질을 공급하고, 생과일은 비타민을 보충하는 데 유익합니다. 다만 생식만이 유일한 건강법이라는 생각은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생식과 익힌 음식의 균형을 잘 맞추고, 식재료의 특성에 따라 조리법을 달리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건강을 위한 식단이 오히려 내 몸에 부담을 주는 일이 없도록, 과유불급의 원칙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